청명, 청명한 하늘에 울리는 청명한 새소리

매년 같은 날이거나 하루 차이로 겹치는 청명과 한식, 그리고 올해는 정확히 일치한 부활절까지. 이 세 날은 모두 겨울의 끝에서 생명이 다시 일어서는 기점을 상징한다. 생태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는 새들이 종족 보존을 위해 가장 치열하게 노래하며 번식을 시작하는 시기와 맞물린다. 추위가 물러가고 식물이 본격적으로 싹을 틔울 때, 사람은 밭을 갈아 씨를 뿌리고 새들은 짝을 찾아 둥지를 틀며 새로운 생명의 주기를 시작한다. 이즈음 청명한 하늘 아래 울려 퍼지는 새소리는 죽음 같은 겨울을 이겨낸 생명의 부활이자 시작을 알리는 선언이다.
청명에 하늘을 본다. 이름 그대로 하늘이 차츰 맑아지는 시기다. 산과 들은 어느새 새소리로 가득하다. 찌익 찌익 시끄럽게 떠드는 직박구리, 정교한 악보를 따라 노래하는 듯한 섬휘파람새의 복잡한 곡조, 병아리처럼 삐약거리는 박새, 작은 쥐처럼 찌지직 우는 곤줄박이의 소리가 교차한다. 재잘거리는 참새와 나뭇가지를 타며 수다를 떠는 동박새, 4분의 4박자 리듬을 고수하는 터프한 롹커 멧비둘기, 들판을 울리는 꿩의 외마디 샤우팅과 어딘가 불편한 아저씨 목소리 같은 큰부리까마귀 소리까지 들려온다. 겨울에서 벗어나 식물이 싹을 틔울 때, 새들도 그들의 삶의 목적인 번식을 준비하며 짝을 찾고 둥지를 만들기 위해 서로 많은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다.
내가 주로 물에 사는 생물을 관찰하고 촬영하다 보니 물새는 익숙하지만 상대적으로 산새와 들새는 잘 몰랐다. 소리로 구분하는 건 특징이 뚜렷한 몇몇 종만 가능했다. 그런데 6월에 예정된 사운드스케이프 심포지엄에 대비해 평대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생태 수업을 진행하다 보니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교실에서 벗어나 신기한 장비로 소리를 듣는 수업은 아이들에겐 즐겁고 새로운 경험이다. 어떤 아이는 연신 너무 재미있다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12명의 아이에게 각각 자신의 새를 정해주었다. 새소리 교구 중 특징이 뚜렷하고 주변에서 들을 기회가 있는 새를 골랐다. 몇 번의 연습을 통해 이제 대부분의 아이가 자기 새 소리뿐 아니라 친구들의 새소리까지 구분하게 되었다.
비자림 실습에선 지나가는 어른들은 그저 새가 지저귄다고 표현하는데 반해,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은 소리를 듣고 섬휘파람새, 박새, 직박구리, 꿩, 멧비둘기라며 구분했다. 아이들이 오기 직전까지 온 숲이 울릴 정도로 망치질 소리를 내며 나무를 쪼던 제주큰오색딱따구리를 보여주지 못한 것이 아쉬워 오늘 아침 다시 비자림을 갔다. 멀리서 나무 쪼는 소리만 날 뿐 딱따구리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오솔길에서 마주친 어떤 가족이 나무 위를 보며 손짓을 하고 있길래 무엇을 보느냐 물으니 딱따구리가 있다고 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아주 가까운 곳에서 암컷 딱따구리가 작은 가지를 쪼아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촬영하는 동안 그 가족은 나를 알아보고 작년 갯것이영화제 때 내 사무실에 와서 영화를 관람한 평대초 가족이라며 반가워했다. 난 촬영하느라 인사도 못 했지만 덕분에 목적을 달성할 수 있어 고마웠다. 6월에 평대초에서 내 다큐멘터리 상영 계획이 있으니 그때 다시 만난다면 고마웠다는 말을 해야겠다. 집에 오는 길에 아쉬움이 남아 하도리 철새도래지에 들러보았다.
만조 때라 도요 물떼새류가 많이 보이진 않았지만 롱다리로 수심을 극복하는 장다리물떼새가 오랜만에 모습을 보여줘 반가웠다. 비로소 지난 겨울의 흔적에서 벗어나 외투를 벗고 따사로운 햇살과 푸른 하늘 그리고 만개한 꽃을 즐기며 아름다운 새소리를 만끽하는 청명이다. <글쓴이 임형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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