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분, '나아갈 때를 아는 지혜'


춘분에는 하늘에서 천문학 이벤트를 하는 날

320일은 24절기 중 네 번째 절기인 춘분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춘분(서쪽 하늘에서는 12월에서 3월까지)은 천문학 이벤트를 하는 날, 3주간 당장 시작해야 할 일이 있다. 천체 망원경 없이도 우주를 실감할 수 있는 1년에 두 번(춘분:서쪽 하늘, 12월에서 3, 추분:동쪽 하늘, 9월에서 12월까지)만 경험을 할 수 있는 날이기 때문에, 조금의 수고스러움을 가지고 경험해 보자.

먼저 맑고 투명도 높은 날 저녁, 도심지 불빛에서 최대한 먼 곳을 가서 일몰 후 40~1시간 사이 서쪽 하늘 낮은 곳을 30초만 올려다보자. 이때 20~30분간은 빛에 눈이 적응할 수 있도록 어둠에 적응하고 시작해야 한다. 시야 확보가 되는 날은 지평선을 달빛이 없는 새로운 달이 뜨는 전후 3~4일 내 지평선 위로 피라미드처럼 솟아오르는 신비로운 희뿌연 빛기둥, 그것이 바로 우주의 먼지가 햇빛에 반사되어 만드는 '황도광'이다. 처음 보면 어쩌면 옅은 구름으로 보일 수도 있어서 최대 3주간은 일몰 직후 서쪽 하늘을 봐야 한다. 이 빛이야말로 북반구에서의 천문학적인 봄의 시작을 알리는 빛이다. , 태양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향하여 적도를 통과하는 시기다.


 

[AI 이미지 생성: 천문학 및 황도광 촬영하는 모습]

동지와 춘분의 인과관계

동지와 춘분은 태양의 고도와 낮의 길이를 기준으로 완벽한 인과관계를 가진다. 춘분은 균형의 날이 아니라, ‘전환이 시작되는 날이다. 지구 자전축이 만든 계절 전환의 스위치라는 점에서 기존에 알고 있던 것처럼, 단순히 낮과 밤이 거의 같아지는 날만은 아닌 것이다.

동지(冬至)는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날부터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동지를 '작은 설'이라 부르며, 태양의 기운이 다시 태어나는 시기로 본다.

춘분(春分)은 동지에 품었던 빛의 씨앗이 땅 위로 뚫고 나와 ''을 틔우는 본격적인 생명의 시작점이다. 춘분은 낮이 길어지는 출발선으로, 빛이 생체리듬을 조절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제주의 절기는 단순한 달력의 숫자가 아니다. 땅속의 미생물부터 들판의 말들까지 일제히 움직이게 만드는 생명 주기의 변화, 그 중심에 바로 '전환'의 정점인 춘분이 있다.

 

동지에서 춘분으로, 생명이 건네는 '나아갈 때의 지혜'

과거에 제주 보리 농사짓는 농가에서는 동지 무렵 '보리밟기(지신밟기)'를 했다. 제주도는 화산 토로 이루어져 땅이 푸석하여 뜬 땅이라고도 하는데, 겉자람을 억제하고 뿌리를 깊고 단단하게 내리게 하기 위해 땅을 밟아 튼튼하게 키울 수 있도록 하는 노동이다.

 

[AI이미지 생성 : 보리밟기 모습]

동지부터 춘분 전까지 보리는 위로 자라지 않고 옆으로 퍼지며 땅에 딱 붙어 지낸다(진흙 속에서 뿌리를 다지는 시기). 하지만 춘분을 기점으로 보리는 본격적으로 줄기를 세워 위로 솟구치기 시작하는데, 이를 농가에서는 '마디 겨루기'라고 부른다.

춘분을 맞아 청보리하면 떠오르는 가파도를 가보았다. 4월 초 시작하는 가파도 청보리 축제지만, 벌써 많은 관광객이 청보리를 떠오르며 유람선에 몸을 싣는다. 제주 가파도 청보리 품종 향맥은 가파도 전체 면적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대표 특산품이다. 맥이 끊길 뻔한 청보리는 최근 명맥을 이어가려고 하는 여러 가지 형태로 관광객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가파도에 가기위해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가파도 보리밭을 거니는 관광객사진정지윤 ]

제주의 향토 품종인 향맥은 동지의 모진 바람을 견디고, 춘분 무렵 급격히 성장하는 강인한 보리다. 제주도는 화산질 토양이라 농사가 어렵지만, 보리는 척박한 땅속 영양분을 흡수하며 전국에서 가장 먼저 높고 푸르게 자란다. 5월 가파도를 뒤흔드는 아름다운 청보리의 물결은 사실 겨울 내내 보리가 응축해온 생명 에너지가 발산된 결과물이다.



[보리밭에 있는 먹이를 먹는 까치들, 마디겨루기를 시작한 보리싹들, 사진: 정지윤]


나아가야 할 때를 아는 지혜

맑고 투명도 높은 날 저녁, 도심지 불빛에서 최대한 먼 곳을 가서

하늘에서 1년에 두 번밖에 없는 천문학 이벤트를 보기 위해,

빛에 눈이 적응할 수 있도록 어둠에 적응하고

일몰 후 40~1시간 사이 서쪽 하늘 낮은 곳을 30초만 올려다보는 것처럼.


동지(冬至)에 뿌리가 밟히면 밟힐수록

단단한 뿌리를 바탕으로 옆으로 자라다가,

춘분(春分)을 기점으로

위로 마디겨루기를 하며 자라는 보리처럼.

 

2026년 지난 동지의 긴 밤 동안 응축해온 에너지를 동력 삼아, 춘분의 '계절 전환 스위치'를 켜자. 지금 이 순간이 훗날 우리 모두가 각자의 영역에서 개인적 성취를 이루는 시작점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글쓴이 : 정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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