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칩, 장수물에서 만난 제주도롱뇽

고려시대 몽골 침입기, 여몽연합군에 맞서 끝까지 항쟁한 삼별초 최후의 보루였던 항파두리 유적 부근에는 소왕천이라는 소하천이 흐른다. 큰 비가 내리지 않으면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이고 규모도 작아 존재감이 미미하지만, 장수물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샘이 있어 그나마 눈길을 주게 되는 곳이다.
경칩을 맞아 개구리나 도롱뇽의 모습을 기대하며 장수물을 찾았다. 입구 안내판에는 삼별초의 김통정 장군이 성에서 뛰어내렸을 때 찍힌 발자국에서 샘이 솟아 장수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전설이 적혀 있었다. 실제로 마주한 장수물은 바위틈에서 졸졸 흐르는 아주 작은 샘물로, 동요 속 토끼가 눈을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갈 법한 세숫대야 정도의 크기였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곧바로 도롱뇽의 알이 보였다. 알을 낳은 도롱뇽은 이미 몸을 숨겼는지 보이지 않고, 그 자리에는 실처럼 가늘고 긴 연가시 여러 마리가 머물고 있었다. 이 연가시들은 과연 어떤 생물을 숙주 삼아 이곳까지 오게 되었을까 궁금했다. 아마도 사마귀였을 가능성이 크다. 꿈틀거리는 긴 몸이 징그럽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연가시는 청정한 물에서만 발견되는 1급수 지표종이다. 연가시의 생애는 기묘하다. 물속에서 부화한 유충이 작은 수서곤충에게 먹히고, 그 곤충을 사마귀나 여치 같은 상위 포식자가 잡아먹으면 연가시는 포식자의 내장에 기생하며 성장한다. 성체가 된 연가시는 숙주의 신경계를 조종해 물가로 유인하며, 숙주가 물에 도달하는 순간 몸을 뚫고 나와 다시 물속에서 번식을 되풀이한다. 이 기괴한 생존 전략의 희생양은 사마귀나 여치일 뿐, 1차 매개자인 수서곤충이나 다른 생물에게는 어떠한 해도 끼치지 않는다.
장수물 아래 하천을 따라 이어진 작은 웅덩이들에서도 꽤 많은 양의 도롱뇽 알이 관찰되었다. 손가락 굵기의 투명한 알집(난괴) 안에는 녹두를 연상시키는 알들이 들어 있었다. 검게 변한 것은 배발생이 정상적으로 진행 중인 것이고, 하얗게 변한 것은 무정란이거나 발달이 멈춘 것으로 보였다. 알집은 바닥에 흩어져 있기도 했으나 대체로 물속 나뭇가지를 중심으로 빨래를 널 듯 붙여 놓은 형태가 많았다. 거리가 멀어 촬영은 하지 못했으나 암수 한 쌍이 나뭇가지에 붙어 산란을 이어가는 듯한 모습도 포착되었다. 알의 양은 상당한 반면 성체 도롱뇽은 눈에 잘 띄지 않았는데, 이는 도롱뇽이 야행성인 데다 산란 직후에는 천적의 눈을 피해 바위나 낙엽 밑으로 숨는 습성 때문일 것이다.
상류로 올라가니 지름 3미터, 깊이 50센티미터 정도의 소가 나타났다. 그곳에도 도롱뇽 알이 꽤 보였고, 수심이 깊어서인지 가끔 수면으로 올라와 숨을 쉬는 도롱뇽을 볼 수 있었다. 주로 물속에 있는 모습만 보다 보니 이들이 폐로 공기 호흡을 한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도롱뇽은 어린 유생 시절에 아가미 호흡을 하지만 성체가 되면 폐와 피부로 호흡한다. 우리나라에는 살지 않지만 아홀로틀(우파루파) 같은 종은 평생 아가미를 달고 물속에서 살기도 한다. 오늘 본 종은 제주도롱뇽이다. 제주에는 제주도롱뇽 한 종만 서식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제주에만 사는 것은 아니다. 진도와 거제도를 포함한 서남해 섬 지역에도 서식한다. 1만 년 전 제주가 육지와 분리되면서 고립되었지만, 이미 그 이전에 한반도의 다른 도롱뇽 무리와 계통적으로 갈라졌음을 알 수 있다. 각 섬에 사는 제주도롱뇽들 역시 격리된 이후 서로 만날 일이 없었을 것이므로 유전적 분화가 진행 중이겠지만, 아직은 같은 종으로 분류된다.
다시 장수물로 돌아와 도청에서 설치한 안내판을 보았다. 안내판의 도롱뇽 그림이 파충류인 도마뱀붙이처럼 묘사된 것이나, 단순히 청정지역 지표종이라서 보호해야 한다는 식의 문구는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보호의 필요성에는 이견이 없다. 우리가 간과하는 것은 서식지의 중요성이다. 인접한 곳이라도 도롱뇽이 산란하는 곳과 하지 않는 곳이 나뉘는 것은 개체의 취향이 아니라 환경 적합성 때문이다. 대부분의 생물은 서식에 적합한 환경이 사라지면 살 수 없다.
고교 시절 버스 정류장 부근에서 도롱뇽 알을 보약이라고 하면서 생으로 먹는 시범까지 보이며 팔던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돈을 주고 먹으라고 해도 먹을 사람이 없거니와 직접 도롱뇽을 해코지하는 일도 드물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보호 생물이 된 이유는 명확하다. 서식지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단히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하지 않는다. 적당한 습기와 먹이가 제공되는 낙엽 깔린 숲, 그리고 맑은 물이 고인 작은 웅덩이면 충분하다. 멸종위기이니 잡지 말라는 식의 막연한 구호 보다는, 이들이 어떤 곳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직접 보고 그 터전을 지켜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도롱뇽은 우리와 함께 오래도록 공존하며 생태계의 일원으로 제 역할을 다할 것이다.

                                                                                                                          <글쓴이:임형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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